2009년 12월 30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달았으면 좋겠다.
_____________ # 기억 __________________
서울로 떠나와서 흘러 스며든 곳이 봉천동이었다. 아마도 만화방 요금이 가장 싼 곳을 찾아 스며든 것 같다. 그 당시 세상은 만화책이 있는 만화방과 그 외의 곳이었다.
항상 불이 꺼져있던 텅 빈 마루, 복도 한 쪽에 있던 나무 문.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 하나와 창문 하나, 옷가지 몇 개뿐인 공간이 나온다.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무 것도 없던 그저 문 너머에 격리된 공간. 6개월 이상 동안 그 방 안은 변함없이 아무 것도 없었다. 면 티셔츠 한 장 조차 새로 생기지 않았다.
기억의 아틸란티스 같은 잠겨진 대륙인 20대의 봉천동에서, 비디오 방이 떠 올랐다. 네이버 뉴스 기사에서 본 '첨밀밀'의 드라마화 소식에 말이다. 아니다. 비디오 방이 떠 오른 것이 아니고, 뉴스가 비디오방 속으로 잠겨 들고 있는 중이다.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그 당시의 몇 안 되는 세상과의 소통이었다. pc방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도 갔었고, 새벽 4시쯤. 잠들었다 깬 것인지, 아니면 못 잔 것인지 조차 모를 만큼 몽롱할 때도 갔다. 20대의 '나'는 마치 단 한 명의 인간만 걸어 다닐 수 있는 좁고 아주 긴 유리통로 안으로 끝도 없이 흘러 다니고 있다. 유리통로 너머의 스크린에 ‘첨밀밀’의 주제가가 흐른다. 고작해야 2평 남짓한 황량한 공간은 애써 잊어버리고, 스크린 속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명과 장만옥이 보여주는 인간의 크기는 세파보다 작아서 동질감을 느낀다. 섬세하게 잘 지은 표정.
잘 지은 표정?
20대의 '나'는 표정을 짓는 법을 몰랐다. 갑자기 시간이 얼음처럼 깨어지면서 ‘나’는 가까스로 부상한다. 그 후로 수없이 많은 실패와 충격적인 일과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 어둡고 좁은 방에서 혼자서 봤던 '첨밀밀'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깊은 바다 속에 잠긴 보물선의 보물처럼 말이다.
# by | 2009/12/30 09:18 | 트랙백




